검색결과
-
금송아지 앞에서조 병 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공영 방송의 뉴스 시간에 고발 영상이 방영된 적이 있다. 바다에서 쓰레기를 포크레인의 집게로 바닷물에 담그고 있는 장면이었다. 육지에서 수거한 어구나 그물들을 다시 바다에 넣었다가 한참 후에 건져 내는 것이었다. 왜 수거한 그물들을 바닷물에 다시 집어넣었다가 건지는가를 설명하는데, 육상에서 수거한 폐그물이나 어구는 톤당 20만 원을 보상해 주고 바다에서 건져 낸 것은 열 배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바다에서 건져 낸 쓰레기는 돈을 많이 주니까 쓰레기를 바다에 다시 넣었다가 건져서 돈을 받아 간다는 것이었다. 모든 과정이 실제로는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를 싣고 오는 사람이나, 그것을 바닷물에 담그는 사람이나 한통속이 되어서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다가 딱 떠오르는 생각은 ‘사람들이 점점 돈에 미쳐가는구나’, ‘사회가 점점 돈의 노예가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회가 돈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범죄 집단화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마치 고문을 당하듯이 마음이 아팠다. 삶의 공화국은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이 되었고, 돈이 권력이요 법이요, 삼권을 다 장악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은 자신이 수용하기 어려운 사실 앞에 서게 되면 분노가 솟구쳐 오르다가, 분노가 슬픔으로 변하게 되고, 여기에서 미래에 대한 절망감으로 바뀌어지게 된다. 우리가 과거보다는 훨씬 더 잘 살고 있는 것은 분명히 맞지만 과거보다 훨씬 더 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세 상이 되어버렸다. 이 세상에 돈 말고는 이토록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제가 없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수 없다. 지식에 기대를 걸었지만, 지식은 결코 돈의 힘을 이길 수 없다. 권력에 기대를 하지만, 권력도 돈의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듯하다. ‘미쳤다’는 말은 상식적인 룰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뜻이기에 ‘사람들이 돈에 미쳤구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돈이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도덕성을 여지없이 파괴해 버렸다. 우리가 날마다 듣는 소식이 따지고 보면 돈에 관한 이야기이다. 옛날 미국 서부개척 시대 금광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지금도 그대로이다. 현대가 가진 가장 무서운 현상은 돈이 없으면 못 사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세상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사람을 돈의 노예가 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재물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시대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절하고 있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
단순한 거짓말?신훈식 교장 상주동부초등학교 얼마 전의 일이다. 한 선생님께서 수업을 마치고 1층의 교무실로 가기 위해서 계단을 내려가던 중, 아이들 역시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가서 조금이라도 더 놀기 위하여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은 “얘들아~! 넘어지면 다친다. 천천히 내려와!”를 연신 반복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채 만 채하고는 계속 뛰어 내려왔다. 그중 한 학생은 친구들의 몸통을 손으로 다다다 치면서 내려오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1층 가까이 내려와서 넘어졌기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멍이 들 정도의 타박상만 입었다. 문제는 이튿날 발생하였다. 아이의 멍든 모습을 본 부모가 학교에 찾아와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며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어떻게 선생님이 아이의 발을 그것도 계단에서 걸 수 있냐?”고 하면서…. 집에서 아이의 멍든 모습을 본 부모님이 아이에게 다그치자 그만 조심성 없이 다녔다고 혼날까 봐서 선생님이 계단에서 발을 걸어 넘어졌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물론 증인인 다른 아이들과의 삼자대면으로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학교가 아이들과 짜고서는 자기 아이에게 덮어씌웠다는 것이다. 사과하는 것도 부족할 판인데 뻔뻔한 정도가 도를 넘는다. 더더욱 슬픈 사실은 학부모에게 멱살 안 잡히고 머리채 안 잡힌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조(自嘲)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학부모교육을 할 때면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자녀의 이야기를 100%로는 믿지 말라는 것이다. 100% 믿게 되면 큰 실수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의 거짓말하는 습관을 바로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위의 부모 역시 자기 자녀의 말만 믿고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음은 물론이고 이 사실을 아는 모든 이에게 일방적인 것이겠지만 부끄러움을 당했을 것이다. 집에 가서 학교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고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에게 다시 혼났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 밖에는 없다. 이 아이가 자라서 얼마나 무서운 인물로 성장할지가 걱정되고 두려울 뿐이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크든 작든 한 번쯤은 거짓말을 해보았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 때는 나 이외는 절대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이는 나만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당사자인 상대방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을 말하므로 죽었으나 다윗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悔改)를 하였기에 비록 벌은 받았지만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다방과 카페의 차이를 아시나요?”라고 물으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답을 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다방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서로를 볼 수 없게끔 차단되어 있음에 반하여 카페는 서로를 볼 수 있다. 내 안의 내면도 타인이 볼 수 있게끔 개방한다면 거짓이 없는 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숨기면 숨길수록 거짓을 만들게 될 것이며 이는 죄이다. 익명으로 말을 할 때 많은 사람은 무례하게 얘기를 한다. 하지만 실명으로 말을 하게 하면 점잖아진다. 나 이외에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고 확신할 때에 숨기고 거짓을 말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고 언제든지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죄를 짓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거짓말의 대가로 받는 징계가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학교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부터 교육이 무너진 것도 현실이다. 아이들을 금쪽같게만 생각하지 초달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벼운 징계만으로도 반듯하게 키울 수 있는 자녀와 학생을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구불구불하게 자라도록 둔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아니 포크레인으로도 못 막는다. 그 결과는 우리 사회가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다시 안아야 할 재앙이다. 세계에서 사기범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고 지금도 뉴스를 틀면 거짓말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거짓말의 근원은 욕심이고 거짓말을 가볍게 생각하는 이 나라는 결국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가 될 것이 틀림없다.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